대한민국의 또다른 비극의 역사 제주 4.3 사건
이번 독서 또한 문학 작품을 읽어 보기로 했습니다. 지난번에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를 꽤나 의미 심장하게 읽었던 터라 그녀의 작품 세계가 꽤나 궁금해지고 더 경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소설 “채식주의자” 를 통해 맨부커 상을 수상하면서 주목할 만한 작가가 된 한강은 “소년이 온다” 를 통해 대한민국의 현대사의 비극을 재 조명하며 여전히 이념에 사로 잡혀 있는 기득권들을 향해 외침을 울리는거 같았습니다.


두 책을 다 읽어보니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강의 소설들을 왜 주목했는지 약간 이해가 될거 같기도 합니다. 한강의 소설들이 얘기하는 주요 키워드가 “인간” 이기 때문인거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다른 소설을 읽어보는 건 꽤나 의미있는 일이 될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최신작인 “작별하지 않는다” 를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최근에 책을 읽을때 직접 구입하여 보는 걸을 선호하면서 한강 작가의 작품들도 직접 구입하여 읽어보는 중입니다. 저도 나름 책 소장 욕심도 있기도 하고요 ㅋ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셋트로 구입을 했습니다. 이번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셋트의 마지막 순서가 되겠네요.
사실 “작별하지 않는다” 는 어떤 내용인지 사전에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단순히 “한강” 의 작품이기 때문에 구입한 것도 있었습니다. 또한 “셋트” 로 구입한 측면도 있어서 딱히 읽고 싶었던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별하지 않는다”를 직접 읽어 본 저는 광주 5.18 민주화 운동 이전에 대한민국 정부가 저질렀던 엄청난 비극의 역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가 경하가 들었던 제주 4.3 사건의 전말
이 작품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는 “경하” 라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이며 그녀가 알게 된 “인선” 이라는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소설이 진행됩니다.
8월의 여름 날씨에 에어컨도 없는 찜통같은 아파트에서 음식도 통 먹지 못하는 경하의 모습은 뭔지 사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경하는 글을 쓰면서 악몽에 시달리는 고통을 겪고 있는거 같네요.
그러다 친구였던 “인선”이 12월 어느날에 문자를 보내 자기한테 와달라고 요청합니다. 인선은 제주도 출신의 또래 여성인데 제주도에서 거주하면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목공일을 하던 도중에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여 급히 서울의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오랜만에 연락을 받는 경하는 병원으로 가서 인선을 마주하게 됩니다. 손가락이 잘려서 움직이지 못하는 인선에게 어이없게도 지금 당장 “제주도”로 가서 자신이 키우는 앵무새인 “아마”를 보살펴 달라고 부탁을 받게 됩니다.
이유는 “아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거였습니다. 원래는 한마리를 더 키우고 있었는데(아미) 몇개월전에 죽고 아마 혼자 남겨져 있던 상태였습니다. 인선이 사고를 당하고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던 터라 미처 아마의 먹이나 물을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경하는 꽤나 당황스러워 했습니다. 더군다나 부탁을 받은 직후 최대한 빨리 제주도로 가달라는 거였지요. 몸이 성치 않은 인선의 옆에 있는게 아닌 앵무새를 돌봐달라는 부탁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경하는 그 즉시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갑니다. 당시가 12월이어서 제주도는 폭설이 내리고 있었고 경하가 탄 비행기를 끝으로 제주도로 가는 모든 항공편이 결항됩니다.

겨우 도착한 제주공항에서 인선이 머물던 집을 찾아가야 하지만 도로 교통이 폭설로 인해 사정이 좋지 않아 택시도 잡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어렵게 버스가 운행하는 걸 알고 기다리다 겨우 탔는데 폭설로 인해 지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걷다가 넘어지며 다치기도 합니다.
인선의 집은 “중산간” 에 위치해 있는데 와본 경험이 있던 경하는 이마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고도 겨우겨우 걸으면서 인선의 집에 다다릅니다. 그런데 이미 인선이 부탁했던 앵무새 아마는 죽어 있었습니다.
인선의 집은 제주도에서도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어서 폭설이 오게 되면 전기와 수도가 끊겨버린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경하는 죽은 아마를 근처에 묻어주고 인선의 집에서 잠에 드는데….
여기서 부터 작별하지 않는다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책의 서술은 꽤나 독특한데요, 경하가 죽은 아마를 묻어주고 나서 인선의 집에 거주하며 떠오르는 상념과 꿈을 통해 인선과 인선의 어머니인 “강점심” 과의 대화를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소설 초반부에는 경하가 제주 집에 오고 나서도 바로 옆에 있듯이 인선과 대화를 하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묘사됩니다. 그래서 꽤나 헷갈렸습니다)
책에서는 경하가 제주도의 인선의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인선과 대화를 하는 모습이 묘사가 되는데 상식적으로 인선은 제주의 집에 올수가 없습니다. 인선은 몇주동안 병원에서 안정을 취해야 하는 환자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인선의 어머니인 “강정심”은 몇해전에 제주도에서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강정심이 바로 이 소설을 이야기를 풀어가는 핵심 인물입니다.
제주 4.3 사건의 유족인 인선의 어머니, 강정심

작별하지 않는다의 초반부는 꽤나 이야기가 길고 약간은 지루한 느낌이 듭니다. 경하와 인선이 만났던 에피소드에서 인선이 제주도 출신이고 제주도에서 가출을 한 사연, 아버지를 어렸을때 여의고 어머니 강정심의 이야기, 인선이 “다큐멘터리 감독” 으로 활동한 내용, 서울 생활을 접고 제주도로 다시 내려와 강정심과 같이 살면서 장례를 치른 사연 등등이 나옵니다.
꽤 많은 분량을 인물 위주로 설명을 하다보니 제주 4.3 사건의 전모는 꽤나 오래 걸립니다. 그러다 인선도 알지 못했던 강점심이 겪은 끔찍한 시간을 우연히 듣고 나서 인선의 삶도 다르게 흘러간거 같습니다.

제주공항 부지 인근에서 유골들이 발견되면서 인선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알아가다 보니 지난 1947년 제주도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게 된겁니다. 특히 어머니인 강점심이 4.3 사건의 피해자이자 유족이었단 사실도 알게 됩니다.
1947년 당시 무장을 한 군경들이 제주도에 들어오면서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색출해 낸다는 논리로 무차별 학살을 저질렀던 겁니다. 당시만 해도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될 때이고 좌우 이념 대립이 극심했던 시기였으므로 좌익이나 사회주의 이념은 남한쪽에서는 금기시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소설속 강정심은 당시 13살이었으며 자신의 언니와 오빠가 있었으나 언니만 제외하고 모든 가족들이 몰살 당하거나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특히나 다른 가족들은 죽음을 확인했지만 자신의 친 오빠(외삼촌)는 실종되어서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인선은 그런 강정심의 사연을 전혀 알지 못했고 자신의 어머니가 친 오빠를 찾기 위해 1960년 당시 경북 경산의 광산에서 발견된 4.3 사건의 피해자 유골들을 확인하려 제주도에서 경산까지 오갈 정도로 오빠 찾기에 진심이었던 사실도 알게 됩니다. 또한 인선이 수집한 자료들을 통해 유족회에서도 강정심이 꽤나 적극적으로 활동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지요.
그래서 인선 또한 4.3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다큐멘터리 제작” 을 한거 같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사연을 찾아 과거 “베트남 전쟁”, “일제시대 만주 사변” 등의 피해자들을 찾아가 인터뷰(대부분 강정심과 같은 여성 피해자들)를 한것도 그런 이유 입니다.
그럼에도 인선의 어머니인 강정심은 살아 생전 끝내 자신의 친오빠를 찾지 못합니다. 또한 생사 여부도 확인하지 못합니다. 소설속에서는 살아있을 가능성도 언급하지만 강정심이나 인선 또한 외삼촌을 찾지 못하는 걸로 묘사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저도 제주 4.3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 5.18 민주화 운동도 현대사의 비극이라고 생각했지만 제주 4.3 사건은 정말 규모면에서 엄청난 사건이었던거 같네요.
확인된 사망자만 1만명이고 추정만 3만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정말 “전쟁” 같은 사건이었고 그 희생자들은 좌우 이념과 상관없는 죄없는 민간인들이 대다수였다고 합니다.
예전에 전쟁 영화 중 “태극기 휘날리며” 를 본적이 있습니다. 주인공 진태의 부인인 영신이 “보도연맹”에 가입했단 이유로 갑자기 학살을 당한걸 본적이 있네요.
6.25 전쟁의 특수성이 있었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미 1947년 제주에서도 이런 이념 때문에 엄청난 사람들이 희생했다는 비극이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이 책의 뒷 표지에 보면 어느 평론가가 남긴 문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죽었음에도 나는 그와 작별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담긴 제목이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친오빠를 단지 이념 때문에 잃은 “강정심”의 회한과 고통, 투쟁등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또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유를 다시 알게 된 작품인거 같습니다.
꼭 한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작품입니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