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년과 슬픈 역사에 대해
이번 책은 “문학” 작품을 선택을 했습니다. 직전에 읽었던 책이 유시민 작가의 고전 이야기인 “청춘의 독서” 인데 이 고전을 읽고 난 뒤 인류 사회에서 국가와 인간간의 관계가 꽤나 상충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청춘의 독서는 2025년에 다시 출간된 “특별 증보판” 인데 여기서 최근 대한민국 사회의 핫 이슈였던 “12.3” 계엄에 대한 유시민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인류 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는거 같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의식과 욕망은 과거에 비해 퇴행할 수 있다는 걸 말이지요.
물론 어떤 게 더 나은 방향이다라는 건 정답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게 더 나은 방향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게 되었습니다.
결국 계엄을 일으킨 장본인은 몰락하고 새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다행히 독재가 들어서지 않고 민주 공화정이 유지 되었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40여년전의 계엄 군부 독재의 악몽이 떠오르기에 충분했습니다.
저는 이제 중년의 나이대에 접어들었지만 제 기억속에 “계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떠오르는 기억은 “87년 민주항쟁” 정도가 되겠네요. 당시에도 어린 나이었기 때문에 체감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과 일가 친척들로부터 1980년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비극적 역사는 익히 잘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 책은 그래서 1980년 당시에 있었던 이야기에 대한 책입니다. 저자는 작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한강” 입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은 얼마전에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맨부커 상으로 유명해진 “채식주의자” 입니다.

채식주의자를 읽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한강 작가의 작품 중에서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책이 있다고 해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소년이 온다” 입니다.
어느 중학생 소년이 비극적 역사에 휘말리다
이 책의 초반부에는 5.18 당시의 무대인 광주의 전남도청에서 “동호” 라는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동호는 군인들의 총탄에 희생된 사람들을 목격하고 그들의 장례를 돕게 됩니다.
동호는 이제 중학생 밖에 안된 소년입니다. 군인들이 왜 광주에 와서 총을 발사하고 사람들을 죽이는지 이유도 알지 못합니다. 결국 도청에서 사람들이 총을 직접 들고 군인들에게 저항하기로 하자 동호도 그 행렬에 끼려고 하다가 이야기가 잠시 다른 화자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직접적으로 서술하거나 묘사하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그 현장을 목격했던 동호를 비롯하여 선주, 은숙 등의 인물들의 기억과 에피소드를 통해 고통스러운 그날의 감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년이 온다에서 특징적인 것은 5.18 민주화 운동 그날의 기억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어린 인물들(고등학생, 20대 초반 등)의 겪었던 1970년대 후반의 노동 운동과 당시 사회상의 모습에 대해 묘사를 한다는 점입니다. 군부 독재 정부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와 경제 발전의 목표 아래 희생을 강요하던 공장 노동자들의 인권 탄압의 현장도 등장합니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중학생, 고등학생, 20대 초반 청년들의 끔찍한 기억과 울부짖음, 고통스러움 등을 묘사하고 있어서 20대 청춘을 이미 자유롭게 보낸 저로서는 꽤나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5.18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이 마치 죽어서 “혼” 이 되어 주검을 직접 내려다보며 끔찍했던 당시 상황에 대해 나레이션으로 말하는 듯한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또한 군인들에 의해 붙잡힌 시위대, 시민군들에게 행한 고문, 억압에 대해서도 묘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민주화가 되고 21세기의 자유 분방한 문화와 인권을 중요시하는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과는 완전 다른 시대였다는 걸 이 책에서 알게 되는거 같네요.
특히 당시 계엄군이 남녀노소 심지어 임산부와 어린 청소년들에게도 무자비하게 총칼을 사용했다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하게 됩니다. 책 초반부에는 몰랐지만 후반부에서 동호의 어머니의 독백을 통해 결국 그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동호가 희생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인류 사회의 “자유”는 결국 피로 이루어졌다
계엄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고 5.18 을 통해 수많은 희생을 만든 군사 정부는 결국 민주화의 열망에 무너지게 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참혹하고 비인간적이었는지 “소년이 온다” 에서 당시 사건으로 인해 계속 고통을 겪고 있던 청년들의 모습 또한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권력을 잡았던 세력들은 여전히 5.18 민주화 운동을 부정하고 “이념” 잣대를 들이대며 비하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 책에서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요청하지만 당시의 끔찍한 고통으로 증언을 거부하는 선주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당시 사진이 너무 끔찍해서 기억을 하기 싫어하는 “김진수” 의 시민군 동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거조차 고통스러웠을거 같습니다.
책 후반부에 자식인 동호를 잃고 기억을 되새기는 동호 어머니의 모습에 굉장히 짠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동호의 이야기는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묘사가 되었다고 하는군요.
사실 이 책에서 묘사된 인물들이나 1980년 당시 5.18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은 아무 정치적 이념이나 목적도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단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군부 독재를 비판하고 저항했던 시위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중학생” 동호도 이념을 알았을까요? 소설속에서 동호는 단지 안타깝게 희생된 사람들을 돕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겁니다. 그때 당시 희생자들도 비슷한 심정이었던거 같습니다.
불과 4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현재도 전세계 각지에서 민주화와 자유의 열망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정부와 정치집단이 존재합니다. 소수 인간들의 권력과 욕망 때문에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게 인류의 숙명인가? 싶기도 합니다.
결국 역사시대부터 기록된 자유의 역사는 “피와 희생”으로 이뤄진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5.18 민주화 운동의 희생 덕분에 우리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작가의 에필로그가 묘사 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1980년 당시 열살이었고 그가 유년기에 살았던 집이 전남도청과 그리 멀지 않았던 곳이었다는 것도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작가는 서울에 있어서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소설의 집필을 위해 광주를 다시 방문하였고 동호 이야기를 쓰기 위해 어머니와 만났던 일화도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느꼈던 감정들도 에필로그에 서술하고 있는데 쉽지 않는 주제 때문인지 꽤 어려웠던 작업인 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주제가 워낙 민감하기도 하고 현대사의 비극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또한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소년의 온다” 를 읽어보면 특정 대상을 비판하거나 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대신에 그날의 끔찍한 기억들을 어린 소년들과 청년들을 통해 감정들을 묘사함으로서 피해자들의 고통스러웠던 그날의 기억을 생생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속 인물들이 어린 피해자들이었다는게 너무나 안타까웠던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