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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간관계가 부질없다고 혹은 확실히 정리되었다고 느낄때

우리는 사회적 동물의 정확한 의미를 잘 모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학교를 다닐 때 배웠던 구절이다. 사실 난 어렸을 적만 해도 이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사람은 서로서로 돕고 사는 존재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어떻게 돕고 사는지에 대한 부분이 애매모호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가지고 시장에서 먹을 것을 구입한다. 그런데 여기서 서로 돕고 사는 존재라는 인식은 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닌 “돈”을 지불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난 어렸을 적에 “사회적 동물”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단순히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키워 놓고 잡아 놓고 만들어 놓은 것을 가져다 쓰기 때문에 “사회적 동물” 인가 보다 했다. 

우리는 반 강제적으로 “인간 관계”를 맺기를 강요한다

사회적 동물의 의미를 잘 모르는 내게 나이가 들고 성장을 하면서 반 강제적으로 누구를 만나게 되어 있다. “유치원” 혹은 “학교”에서 생전 모르는 같은 또래들과 만나게 되고 같이 배우며 성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학교에서 또래들과 만남은 굳이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부모에게 학교를 가고 싶다고 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당연히 그 나이가 되면 학교를 가게 되고 친구들을 만나게 되며 때론 즐겁고 때로는 즐겁지 않은 일도 발생을 하게 된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반드시 “집단 생활”을 하게 된다 – pixabay

내가 초등학교 시절,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왜 학교를 가야 해? 안가면 안 돼?”라고…  

하지만 엄마의 대답은 명확했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정상적인 사람이 되지 않는단다. 학교를 잘 다녀야 공부도 잘하게 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거야.”   

하기사 내 주변 또래들 중에서는 “학교”에 가지 않은 친구들은 단 한명도 없었다. 친구들 중에는 가정환경이 어려워서 혹은 몸이 좋지 않아서 학교를 잠시 쉬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대한 평가는 별로 좋지가 않았다. 그리고 같은 반에 출석을 자주 하지 않거나 1살이 많은 형이 있다고 하면 안 좋은 시선으로 보기도 했다.  

사실 출석을 자주 하지 않거나 학교를 잠시 쉬고 나서 다시 다니는 것은 크게 잘못되거나 안좋은 시선으로 볼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런데 그네들이 잠시 학교라는 집단에 떨어져 있다고 해서 안 좋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그만큼 사람은 같이 모여 있거나 같이 생활을 해야 하는 “강박관념”이 있는 거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다) 

이런 게 사회적 동물이라는 의미인가?라고 잠시 생각해보고 나서 별생각 없이 나는 초/중/고등학교를 남들과 똑같이 생활하고 졸업을 했다. 그리고 남들이 다 간다는 “대학”도 진학을 했다. 

좋은 인간관계가 “덕목”이라고 가르쳐준다

성인이 되고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는 “인간 관계” 에 대한 덕목이나 예절들을 여기저기서 강요하거나 가르친다. 대학교에 가서는 예비역 선배들의 “군기”로 인해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군대에 있으면 “인간 관계”는 매우 중요해진다 – pixabay

특히 “남성” 들의 경우에는 군대에 가면 수직적인 문화에 덧붙여 무조건적인 명령 수행을 강요받는다. 거기에 그 특유의 한국적인 “유교” 문화와 군대도 사회생활이라는 윗사람들의 “덕목”에 힘입어 누구에게 잘 보이고 인간관계를 잘 쌓아놓으면 군대 생활이 편해지기도 한다.  

나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예외일 수 없었다. 누군가를 상대하기 싫어도 군대 생활을 좀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 “잘 보이”거나 처세술을 잘 발휘한다. 뭐 먹을 거라고 하나 가져다주면 그만큼 내 생활은 편해진다.  

상대방이 내게 싫은 소리를 해도 “비유”를 잘 맞춰주면 이내 불편한 상황이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2년이 넘는 시간을 철저히 “사회 생활”에 길들여진 덕분에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도 “좋은 인간관계”는 내게 덕목인 거처럼 느껴졌다. 

대학을 복학하고 직장 생활을 어느 정도 하기까지 이런 상황은 지속된다. 명절때 친인척 어른들에게도 결혼 이야기 외에는 직장 생활을 하는데 “관계”가 중요하다고 “덕담(?)”을 건네받는다. 나도 그런 말에 딱히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알겠다고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인생의 전환기인 “결혼”. 나는 한편으로는 충격을 받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어느정도 하고 나서 직장 동료들의 특성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직장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마음은 여전했다. 

위 글을 썼을 때는 이미 “인간관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다. 그 깨달음을 얻음 시점은 공교롭게도 “결혼”을 하고 난 시점부터이다.  

내게 결혼식은 중요한 순간인 동시에 깨달음의 시간이 되었다 – pixabay

결혼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인생에 있어서 “큰 사건” 이다. 누군가 좋아하는 이성을 만나고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났다면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데 결혼식까지 가게 되는 과정이 생각보다 꽤 난관이 많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우리 부모 뿐만 아니라 상대방 부모까지 신경을 써야 하고 “협상”의 주도자가 되어야 한다. 이 임무는 여성보다는 “남성”이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꽤 스트레스를 받일 수 있고 그동안 겪지 못했던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생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주변에서 청첩장을 받으면 웬만해선 다 참석을 했다. 참석을 한 이유는 단순하다. “축하를 해 주기 위해서다.” 굳이 나랑 친하지 않더라도 안면이 있거나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직장 동료라고 해도 되도록 참석하고 사진도 찍었다.  

어느 누구는 내가 결혼할 때 “축의금”을 돌려받기 위해서 그런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거에 관심은 없었다. 결혼을 하는데 축의금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결혼이라는 중대사에 축하를 해주고 인사 한번 해주면 그걸로 된 거다.  

막상 내가 결혼을 한다고 하니 주변인들에게 “청첩장”을 돌리게 되었다. 아무한테나 돌리진 않고 그래도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고 그들 결혼식에도 참석한 사람 위주다. 

일일이 연락을 돌리고 인사를 하면서 저녁을 먹기도 하고 차도 마셔가며 결혼을 하게 되니 시간나면 참석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결혼을 준비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결혼 준비에 신경 쓰랴 청첩장 돌리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결혼 준비는 신경써야 할일들이 너무 많다 – pixabay

그런데 연락을 했던 사람들 중에 서서히 그들의 “본성” 이 드러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들의 결혼식에는 몇시간에 걸쳐서 대중교통을 타고 결혼식에 참석하였지만 그들에게 막상 내 결혼식에 참석해달라고 하니 대놓고 바빠서 참석을 못하겠다고 하거나 못 갈 수도 있다는 등의 답변을 들었다.  

이때부터 사람에 대한 실망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축의금은 별로 관심이 없다. 단지 내 결혼식에 와서 축하만 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실망스러운 사람들 중에는 내가 “친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꽤 포함되어 있었다.  

일단 결혼식이 중요하니 그런거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결혼식은 진행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하객들로 본 사람들 중에는 내가 생각했던 사람들이 상당수가 오지 않았다.  

심지어는 “친가 쪽 친인척” 들도 오지 않은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물론 그들은 어느 정도 이유가 있었다) 정신없이 끝낸 결혼식이 끝나고 나니 마음 한편에는 “서운한” 감정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결혼식 사진이 나오게 되고 방명록을 확인하면서 “관계” 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다시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 머릿속에 충격이 오기도 했다. 

이제야 관계의 피곤함 그리고 상대방들의 심리를 알게 되었다

결혼식을 하기 전에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그리고 당연히 내 결혼식에는 와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연락도 없이 안 나타난 것을 보고 충격과 동시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인간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게 맞는 것일까? 내가 상대방들에게 잘하는 “기버(Giver)”가 되더라도 상대방들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는 대체적으로 “기버”에 속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저녁을 먹더라도 상대방에게 목적이 있어서 만나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사람이 좋고 대화가 편하면 만나는 거였고 상대방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음식을 사거나 하는 편이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이 나고 나서 오지 않은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해졌다. 내가 그들을 친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일까? 아니면 내 결혼식 당일에 무슨 일이 생겨서 일까? 혹은 결혼식에 와서 “축의금”을 내기 싫어서 일까? 

반대로 3~4시간 걸려서 내 결혼식까지 와준 사람들도 있었다. 오히려 이들은 내가 올꺼라고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이 축의금까지 냈다면 꽤 큰 부담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걸 감안하고 내 결혼식에 와준 게 굉장히 고마웠다.  

“결혼식”은 내게 인간 관계의 의미를 다시 정의해준 사건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결코 순수하지 못하며 사람들의 이익과 목적에 의해 유지되거나 철저히 끊어지게 된다.  

난 그래서 “한국 사회”의 결혼식 문화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짧은 1시간 내외의 결혼식을 하기 위해 많은 비용 부담을 하게 되고 또한 하객들은 “축의금”이라는 돈을 꼭 내야만 하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 이는 결혼 당사자들도 부담이고 하객들도 부담인 “서로에게 민폐”인 셈이다.  

오히려 내 결혼식에 참석만 해주면 고맙다는 “순진”한 생각을 한 내가 바보였던거 같다. 난 축의금을 내지 않아도 내 결혼식에서 축하를 받으면서 덕담을 건네는 순간을 생각했지만 상대방들은 부담이 되거나 내가 결혼식을 갈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굳이 결혼식을 가지 않고 “관계”를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 난 직장을 다니면서 항상 이런 내용을 마음속으로 기억하고 있다.  

목적없는 인간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베풀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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