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직장 동료들과 술을 먹었다. 여전한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술자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직장을 다니다 보면 별의별 일들이 다 생기기 때문에 가끔씩은 그 회포를 풀어야 한다. 안 그러면 스트레스받아 금세 병이 걸릴지 모른다 ㅎㅎ
현재 방역수칙으로 인해 5인이상과 밤 10시 이후로는 모임이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각자 가정이 있는 유부남들이므로 가정에 걱정이 끼치지 않게 짧은 시간 동안 3명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밤 10시까지 술을 권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내일을 위해 각자 “대리기사”를 호출하여 집으로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회식 장소에서 가장 집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일까? “카카오 대리”를 통해 호출한 대리기사는 맨 마지막에 도착했다. 난 술을 자주 마시지 않고 대리도 자주 부르는 편은 아니지만, 목적지를 쉽게 전달하고 결재의 간편함으로 인해 “카카오 대리”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호출한 지 대략 10여 분 만에 도착한 대리기사는 상당히 친절했다. 물론 대부분의 대리기사는 친절한 편이지만 오늘 담당 대리기사는 도착하자마자 미안하다는 말부터 한다. 나를 많이 기다리게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단 여기서부터 그의 친절함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아유~ 괜찮아요.”로 그의 친절함에 대꾸를 한 나는 내차로 이동했다. 그는 “킥보드”를 지니고 있었는데 내 차 트렁크에 “킥보드”를 실어도 되냐고 묻는다. 난 당연히 “물론이죠.”라고 했다.
최근에 대리 기사를 호출해 보면 거의 절반이 “퀵보드”를 지니고 다닌다. 아마도 이동에 편리함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리기사일을 해보면 알겠지만 밤이나 새벽에 대리일을 끝내고 이동하는 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택시를 이용하는 것은 수익의 적자를 볼게 뻔하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도 시간상 어렵다.
난 이런 점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흔쾌히 내 차 트렁크에 싣는 것을 허락한다. 그리고 싣는다고 해서 차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고맙다는 표현을 하고 내 차 운전석에 탑승한다.
차를 몬지 3분 여가 지났을까? 대리기사가 내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먼 곳에서 술을 드셨네요? 가까운 곳도 맛있는 곳이 많은데…” 참고로 난 대리기사와 되도록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일단 내가 피로해서 이고 두 번째는 처음 본 사람에게는 말이 항상 조심하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직장을 십여년 넘게 다녀보고 느낀 것 중에 하나는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불필요한 대화를 하지 않는 게 오해를 줄이는 것인 듯하다. 내 직업이 사실 말이 많이 필요 없는 직업이기도 하고 말을 잘못하면 정보 전달이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는 점도 있다.
어쨌든 직장을 다녀보니 말이 많아서 좋을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반면에 불합리하거나 불리할 때는 말이 많아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습관이다.
그렇게 대리기사가 먼저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일단 그의 친절함을 봤기 때문에 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질문에 답을 해줬다. “직장 동료들이 수원에 살고 있어서요. 제가 희생한 거죠 ㅎㅎ”
그랬다. 그날 우리들의 술자리는 “수원”에서 이루어졌고 내 목적지는 수원보다 남쪽이었다. 마침 그도 그날 대리운전을 마치고 집으로 복귀하려고 할때 내 호출을 잡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의 말은 자연스레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가장과 부동산
대화가 시작되면서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들어보니 내 또래의 가장인듯 보였다. 그는 30대 후반~40대 초반인 듯 보였고 결혼한 아내와 어린 딸아이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요즘 부동산이 너무 올랐네요. 얼마전까지 동탄 살다가 전세금을 못 올려줘서 어쩔 수 없이 이사했어요…”
그의 하소연이었다. 그도 나랑 대화를 해보고 같은 또래의 직장인인지 간파를 한 듯 하다. 그러면서 요즘 가장 큰 고민인 문제를 얘기하기 시작한다.
사실 그가 이런 얘기까지 내게 할줄은 몰랐다. 청소년기나 대학생 때야 친구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막 나눌 수 있겠지만 안면이 없는 사람과 “현실”에 대한 얘기를 나눌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거침이 없었다.
“집주인이 계약 2개월을 남겨두고 전세금을 무려 2억을 올려달라고 하네요. 무슨 수로 그 기간에 2억을 구하나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집을 사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 집을 사버렸어요.”
그는 현 임대차 보호법을 적용받지 못한 듯 했다. 물론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최근 들어 갑자기 폭등한 부동산 가격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은 듯했다. 전세가가 1억 9천인데, 집주인이 계약기간 2개월을 남겨두고 무려 2억을 올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너무 하지 않은가? 물론 집주인이고 세입자고 간에 각자의 사정이 다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현재 금액의 두배를 올려달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갑질”이지 않나 싶다.
경기도 화성 “동탄”의 경우도 부동산이 엄청나게 뛰었다고 했다. “동탄역” 근처 아파트는 매매가가 15억이 넘는다고 했다. 와~~ 정말이지 미친 부동산 가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이니 내 옆에 있는 대리기사의 가정에도 고스란히 그 여파가 미쳤을 것이다. 그의 말투에는 하소연과 허탈함, 그리고 약간의 쓴웃음이 묻어 있었다.
“부동산이 너무 많이 올랐어요. 그리고 정말 부자도 많나 봐요. 정부에서 잘못하는 것도 있지만 맘먹고 투기를 하게 되면 오를수 밖에 없나 봐요..”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현 정부에서 집값을 잡겠다고 온갖 정책을 다 쏟아냈지만 그 정책은 부동산 가격의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상승에 부채질만 한 격이 되어버렸다.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한 가지 방법은 예로 말해준다.
“가족끼리 금액을 높여서 매매하면 실거래가가 되기 때문에 이런 수법으로 가격을 올리기도 한다네요.”
그렇다. 저금리의 갈곳 없는 돈들이 투기세력의 갖가지 방법에 속수무책인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진화된 방법으로 부동산 가격을 여전히 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와 그와 같은 서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그는 동탄보다 훨씬 남쪽인 동네의 오래된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와이프와 아이가 적응에 큰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노라고 했다. 사람이 환경이 바뀌면 적응에 애를 먹기도 하는데, 그걸 걱정했지만 가족들이 잘 적응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와 얘기를 하고 있노라니 왠지 모르게 씁쓸하고 허망해지는 듯 했다. 참고로 그는 낮에는 직장을 다니는 “직장인”이라고 한다. 무슨 이유에서 “대리 기사”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가족을 위해 힘든 몸을 이끌고 야간에 대리 일을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그는 집을 구입했을때 당연히 은행 돈을 빌려서 구입했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판단했는지 모른다. 빛으로 산 오래된 아파트와 가족들. 이런 요소들이 그를 움직였을 것이다.
어느덧 그의 운전에 힘입어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했다. 참고로 난 아직까지 집에 대한 큰 걱정이 없는 편이다.(빛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ㅎㅎ) 그러고 나서 그는 우리 집 앞에 주차를 해준다.
주차된 차들이 만원이라 할수 없이 벽에 붙여야 됐었는데, 조수석 쪽이 붙어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내쪽을 약간 떨어트리면서 차를 댄다. 그래서 내가 가까이 붙여서 대라고 했다.
“아유~ 내리시기 힘든데 괜찮을까요?”.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잘 내립니다. ㅎㅎㅎ”
그는 고맙다는 말한마디와 함께 트렁크에서 킥보드를 꺼낸 후 순식간에 자리를 떴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를 반성하게 되고, 현 세태를 뒤돌아보며, 미래의 내 자식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복잡 미묘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