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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의 개인의 삶이란?

지난주 수요일, 우연히 JTBC에서 방영된 ‘차이나는 클라스’를 봤습니다. 포항공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이진우 교수의 강의였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철학 혹은 인문학이랑은 거리가 멀지만 평소에 삶과 철학에 대해 관심이 있던 저로써는 호기심이라도 방송을 보게 된 거 같습니다. 

철학이라.. 어려운 주제일 수도 있지만 철학은 우리 인간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다룬 학문일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인간의 삶 자체가 늘 고민거리이며, 풍요로운 물질의 혜택을 받고 있는 현대에서도 현재와 미래를 위한 우리의 삶은 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고달프기 때문입니다. ( 물론 현대 사회에서의 개인의 삶은 예전에 비해 많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

고대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최후를 묘사한 그림

그런데, 여기서 짚고 가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현대 우리들의 삶이 풍족해졌다고는 하나 과연 개인의 삶은 행복해졌을까요? 범위를 좁혀 보면, 과연 대한민국에서의 개인의 삶은 행복해졌을까요? 이번 포스트에서는 제 나름대로 대한민국의 개인의 삶에 대하여 끄적여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

전쟁의 참화에서 눈부시게 성장한 대한민국


기록된 역사만 5천년 가까이 되는 대한민국은 긴 역사와는 다르게 수많은 부침을 겪어왔습니다. 고조선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때론 대륙을 정복할 정도의 기상을 가진 민족이었고(고구려/발해) 한반도의 통일에 만족하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던 민족이었습니다. (통일신라/고려/조선) 하지만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역사에 기록된 사실만 900여 회)과 영향을 받아 평화로운 시기를 그다지 보낸 적이 없는 내우외환을 많이 겪은 민족이기도 합니다.  

현재까지 조선 이후 대한민국으로 이어져오는 이 나라는 단결력 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중국/일본/러시아/미국 등지의 외세의 등쌀에 시달려 왔지만, 지도자들의 헛발질은 많이 있었어도, 그 위기를 백성 혹은 민초, 시민들의 단결과 노력에 힘입어 극복해 왔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 시대를 사는 제게는 우리 조상들의 노력과 인내심, 단결력이 굉장히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작은 한반도 지역에 국한되어 있는 사람들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과 아픔을 겪으면서까지 때로는 목숨까지 바치는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현재에 대한민국에서 나름 평화롭게 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한 거 같습니다. 

6.25 전쟁 당시의 군인들의 모습

가장 최근에 벌어진 6.25전쟁은 정말로 비극적인 전쟁입니다.   외세인 일본의 식민지에서 갓 벗어난 상황에서 또 다른 외세인 미국과 소련에 의해 정치적인 목적의 대리전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리전의 무대가 바로 한반도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38선을 기준으로 동족끼리 총을 겨누고 싸우는 대 비극이 발생합니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한반도는 많이 사람이 죽고 산업시설이 폐허가 되는 참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물론 이 상황은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상황이었을 겁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가까운 가족을 잃고, 휴전선을 경계로 서로 이별을 하게 했으며, 일제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서려는 대한민국을 가난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6.25 전쟁은 그만큼 대한민국에게는 아픈 상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역사에서 보듯, 한국인들은 그 위기를 끊임없는 노력으로 극복해 냅니다. 1960년대 부터 시작된 경제개발계획으로 일명 새마을 운동으로 시작되는 전략을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으로 인해 1980년대부터 누구나 중산층을 꿈꾸는 경제발전 신화를 만들어내는 나라로 도약합니다. 이를 보고 외국에서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니까요. 그만큼 일반 시민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낸 대단한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새마을 운동 당시의 모습

경제대국인 대한민국 발전의 이면


현재 대한민국의 세계 GDP 순위는 11위입니다. (2017년)  우리들 스스로는 체감을 할수 없겠지만, 우리 앞의 국가들을 보시면, 땅덩이와 인구가 엄청 크거나(미국, 중국, 인도, 브라질, 캐나다) 소위 말하는 전통적인 선진국(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일본)뿐 입니다.  

 2017년 국가별 명목 GDP 순위 (출처 : 나무위키)

 
대한민국 사림들이 지향하는 소위 복지국가인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의 나라들도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 작은 땅덩이에 많지 않은 인구(5천1백만, 상대적입니다.^^)로 세계 11위 정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는 전 세계에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같은 인구 규모인 아르헨티나도 땅덩이만 컸지 경제규모는 우리나라에 한참 뒤처집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 경제규모에 맞게 혜택과 여유로움을 누리고 있을까요? 선진국 가입 클럽인 OECD 국가의 수치들을 언론사나 방송사에서는 늘 비교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OECD 국가들의 수치에서 경제 부분 빼고는 모든 삶의 질 순위에서 꼴찌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자살률은 OECD 국가에서 늘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가끔가다 2위를 하기도 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걸까요?

어렸을 때 부터 전체주의(집단주의)의 가치를 가르치는 사회 

저는 어렸을때 국민학교를 다녔던 세대이긴 합니다.ㅋ(이하 초등학교라고 하겠습니다.) 초등학교에 등교를 하면 주 1회 혹은 사정에 따라 2번 정도 전체 운동장 조회를 합니다. 당시에는 초등학교에 강당이 거의 없었던 시절이므로, 춥건 덥건 간에 학교 운동장에서 조회를 했었는데 아이들이 운동장에 모이면 줄 간격을 잘 유지하는 행동과 국기에 대한 경례, 일사불란한 행동 등 지금 생각해 보면 군대에서 추구하는 가치들의 모습을 학교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거 같았습니다.  

운동장에서 서있는 게 싫건 좋건 줄을 잘 맞춰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충성을 다해야 조회가 끝이 납니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개인 의견을 듣는 거보다는 일방적으로 선생님의 가르침과 노트에 필기하는 걸로 수업이 끝나게 합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잡담을 하거나 개인적인 생각을 얘기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늘 수업시간에는 조용해야 하며, 토론 시간은 서로의 생각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튀는걸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시간에 혼자서 전체의 행동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것을 나쁘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 행동이 잘했던 잘못됐던 말이죠.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을 집단의 가치에 따라가게 하는 즉 전체주의의 가치관이 우선이라고 심어주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목표는 딱 정해져 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입니다. 그 아이가 공부하고 싶건 공부하기 싫건 간에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라는 가치관을 어렸을 때부터 강요를 받습니다.

운동에 소질이 있건 음악에 소질이 있건 기타 다른 분야에 소질이 있건 간에 개인의 특성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라는 것을 강요합니다.

  사진. 안타까운 사례인 천재 김웅용 교수의 어렸을 적 수학 문제를 푸는 사진. 김웅용 씨는 IQ 210의 세계 최고 지능지수의 기네스북 보유자이지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는 삶을 살다 최근에서야 평범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다. 누가 됐든 간에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해야 하고 공부를 못하면 사회적 낙오자로 찍어버린다. 즉 최고의 가치관이 공부 잘하는 학생인 것이다. 그 학생이 의도 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는 인식을 강요한다. 공부는 최고의 가치이며, 공부 외에 학창시절에 다른걸 하면 잘못되었다고 강요받는다. 이는 그 사람의 목표와 자아 및 행복에 상관없이 부모와 사회가 결정지어 버린다. 이에 수많은 학생들이 어렸을때 부터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본인이 맞는 삶에 대한 고민을 하지 못한 채 사회에 나와서 시행착오만 겪는 삶을 살게 돼버린다. 

전체주의(집단주의) 가치가 우선인 대한민국 사회

어렸을 적부터 전체주의 가치를 가르쳤던 대한민국의 개인들은 경제활동을 하게 되는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 가치관에 둘러싸이는 거 같습니다. 바로 개인의 가치와 이익이 우선시 되는 거보다 집단의 이익과 가치가 우선이 되는 바로 전체주의 가치관을 강요받게 됩니다.


여기서 고개가 갸우뚱 해집니다. 과연 그럴까? 우리 회사나 조직은 안 그런 거 같은데…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회사의 매출과 이익을 위해서는 조기출근과 야근을 해야 한다. 여기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지? 그럼 그렇게 해라.
어디 신입 주제에 선배가 얘기하는데 토를 다나?
나 때는 말이야~ 이렇게 다 했었어, 그러니 너희들은 나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똑같이 해야 해.
우리 회사의 단합을 위해서 회식과 주말 야유회(등산)를 해야 해, 할 말 없지?
누구 마음대로 연차를 써? 나는 연차 안 쓰고 싶어서 안 쓰는 줄 알아?
누가 아프래? 나는 아파도 회사부터 나오는 사람이야.
너 의견은 잘 알겠지만, 이미 결정된 거야.. OK?

 
어떤가요?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죠? 요즘 인터넷에서 댓글로 꼰대 6하 원칙이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게 자세히 들여다보면 꼰대들의 특징을 넘어선 우리 대한민국 사회의 전체주의 가치관이 반영된 가치관인 거 같습니다. 잘 보시면 회사와 조직이 우선이지요? 개인의 우선은 없습니다…..

전체주의가 지금의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지난 50여 년의 대한민국이 눈부시게 발전하여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건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거 같습니다. 정말 신화라고 표현될 정도로 전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소위 선진국으로 표시되는 OECD클럽에 가입하기 까지…  

집단의 발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회사와 조직의 발전에 개개인의 희생과 노력이 강요되었던 것입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주 6일 이상을 회사와 조직을 위해 개인이 희생되었고, 그런 노력은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성장을 시켰지만 개개인의 행복은 뒤로 밀린 게 사실입니다. 즉 배고픔은 해결되었지만, 개인의 행복과 이상은 외면되었지요. 

그러나 아직도 전체주의 가치관은 대한민국에서 우선시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처럼 현재까지도 어렸을 때부터 강요되는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지 않는 교육, 성공을 위해서라면 공부가 최고라는 공부 우선주의, 개인의 의견보다 보통이고 무난한걸 괜찮다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회사와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회식과 야근은 당연시되는 분위기 등등….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직까진 개인의 삶은 중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의 역습

 
전체주의의 가치관이 우선시되던 대한민국은 최근 90~2000년대 들어서 분위기가 바뀌어 가는 추세를 약간이나마 보이게 됩니다. 바로 청년들의 역습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개인의 개성이 중시되지 않고, 동일한 교육방식으로 교육을 받아온 청년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합니다. 바로 전통의 거부와 이기주의입니다. 

통계청 : 인구동향조사(혼인)

위의 그림은 통계청에서 발표한 연도별 평균 초혼 연령입니다. 최근에 들어올수록 평균 초혼 연령이 높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수치가 높아진 건 단순한 연령이 높아진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로 청년들의 이유 있는 역습인 것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을 나오면 취업을 보장해 준다는 기성세대의 가치관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했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다수의 청년들이 그 일자리를 얻기에는 산술적으로도 어렵게 된 것이지요. 즉 공부만 잘하면 좋은 직업과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전체주의적 가치관이 현재에 들어서 깨져버리게 된 것입니다.  

전체주의적 가치관에 힘입어 너도 나도 성공을 위해 학창 시절에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했던 청년들은 여기에 서서히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결혼을 늦추거나 안 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물론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긴 합니다만 현재 대한민국의 결혼 기피는 다 이유가 있는 결혼 기피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즉 전체주의의 가치관을 충실히 이행한 청년들의 역습인 셈입니다.  

결혼 기피는 1인 가구의 수를 늘리게 되었고, 한정된 좋은 일자리를 차지한 청년들과 그렇지 않은 청년들의 계층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좋은 일자리를 얻은 청년들은 경제적 안정을 이루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청년들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해 버리게 됩니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되면 경제활동 인구는 줄어들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안게 되지요.   

즉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고 무리하게 전체를 위해 교육을 해온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점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을 해 봅니다.

대한민국 인성의 병폐

차이 나는 클래스에 출연한 포항공대 이진우 철학과 교수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전통 집단주의가 붕괴되어가고 있고 개인주의가 발생했지만, 우리나라의 개인주의는 개인주의가 아니다. 즉 대한민국에는 진정한 개인이 없다…

이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요즘은 혼술, 혼밥, 혼행 등의 개인주의적 행위들이 유행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개인주의의 삶을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을 때, 결코 아니오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 이유는?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때문입니다.  

이러다 보니 대한민국에서의 개인주의는 다르게 인식이 되어 버립니다. 내가 우선이지만, 상대방을 인정하고 서로 배려하는 개인주의가 아닌, 남이사 뭐든 말든 내 이익이 우선인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개인주의가 아닌 것입니다.  

한정된 일자리에서의 탈락, 경제적으로 불안한 사람들, 빈부의 격차, 심한 경쟁 등으로 인해 어떻게든 돈만 벌면 된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분위기 때문에, 내 권리를 주장하는 게 아닌 내 이익이 우선인 이기주의로 변질되어 버린 대한민국 사회에서 과연 개개인이 행복할까요? 그나마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중시하던 도덕과 예절의 가치도 무너져버린 상황에서 돈만 벌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이기주의는 우리의 행복과 이상에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병들어 가는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이 아닐지 우려스럽습니다. 

지난 촛불시위에서 희망을 보다

촛불 시위는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서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인 거 같습니다. 광우병 쇠고기와 최근의 박근혜 탄핵 사태에서 보듯이 개개인의 의견의 표출이 권력으로부터 저항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지난 해 말 박근혜 탄핵 관련 촛불 시위 광경

결과적으로 촛불시위는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게 되었습니다. 그 공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 지도자들이 아니 일반 시민들이었습니다. 일반 시민들의 의견 표출이 광장으로 모이게 했고, 그 뜻이 결과를 바꾸게 한 것입니다. 

지난 역사를 돌아볼 때 대한민국은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국가와 조직을 위해서 개인의 희생을 강요했던 국가였습니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행복과 이상을 추구하는 것을 뒤로 미루라고 했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게 보편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촛불시위를 보면서 기존의 전체주의적 가치관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분노의 폭발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권력자들의 정권유지와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모습에 사람들이 실망하게 되었고, 그동안 국가와 회사를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정권 교체를 이루게 되고, 이 촛불 시위를 계기로 기존의 대한민국의 전체주의적 가치관을 누그러트리는데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하지만 아직 배고프다, 좀더 개인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청년들의 역습과 기존 정치 세력들의 붕괴 등으로 인해 현재 대한민국은 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저도 직장생활을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서서히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개인의 권리나 행복 혹은 복지에 대해서 언급을 하는 게 보입니다. 이는 굉장히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될 거 같습니다. 이진우 교수의 강의처럼 개인이 판단을 할 때 집단의 가치에 맞춰서 소위 묻어가는 식으로 판단을 한다면 개인의 가치는 추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남들이 전부 예스라고 할때 자기의 판단에 있어서 맞지 않으면 ‘노’라고 대답할 수 있는 개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남의 눈치를 보고 남들이 다 하니까 그렇게 한다는 논리로는 개인의 행복과 개인의 목표를 달성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앞으로 교육에 있어서 대한민국 사회는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치관을 반드시 교육을 시키도록 해야 할것입니다. 다양한 개인들에게 똑같은 교육에 똑같은 공부 우선주의의 가치관으로는 앞으로 미래의 대한민국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산업화된 지 50년이 채 안된 대한민국입니다. 서구 유럽과 미국같이 산업화의 역사가 길지 않은 나라에서 그네들과 같이 인식의 변화를 바라는 건 무리입니다만, 이제 더 이상 개인의 가치에 대하여 존중을 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되는 결혼 기피와 해외로의 탈출 같은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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