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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겪은 최악의 “좋소기업” 체험기

역시 인생의 좌절은 “좋소기업” 체험이지….

* 이 글은 글쓴이의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하지만 주관적인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 직장생활은 “중소기업” 체험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십수 년간의 직장생활의 대다수를 “중소기업”에서 보냈다. 그리고 대기업은 발 한번 담그지 못해 봤다. 

대기업은 간접적으로 겪어봤다. 전에 다니던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협력업체” 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기업 직원들과 협업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뭐 역시나 대기업은 갑질 맛이 좋다.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을 불러 제끼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전화, 메일을 보내면서 일정을 닦달한다.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저렇게 몇 명이 동시에 내게 일을 던져도 누가 하나 죄책감이 들지도 않고 자기의 맡은 바를 묵묵하게 수행하면서 월급은 많이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기업이라는 프리미엄을 가졌다는 자부심이 있는지 자기들 자랑은 어찌나 하는지… 뭐 부러우면 대기업을 못 간 내 탓을 해야지. 

물론 여기서 말하려는 주제는 당연히 “대기업” 이 아니다. 대기업을 언급했던 것은 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렇게 나온 것이고 위에서 말한 대기업의 갑질은 내가 겪어본 중소기업 생활중에 일부일 뿐이다. 중소기업은 이런 것 말고도 너무나 많은 좌절을 내게 안겨주었다고 볼 수 있다. 

얼마 전에 난 내 블로그에 중소기업에 대한 글들을 적었었다. 

2020.10.28 – [리뷰/직장] – 청년들은 왜 중소기업을 기피할까?

2021.08.31 – [리뷰/직장] – 중소기업 이직시에 지원한 회사가 다닐만한지 판단하는 법

그중에서 바로 위의 글인 “중소기업 이직시에 지원한 회사가 다닐만한지 판단하는 법”에서 언급했던 “추노” 방법을 언급했었는데…. 설마 내가 다시 그런 상황에 맞닥트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나름 중소기업에서 잔뼈가 굵었던바, 그동안에 겪었던 중소기업들은 그래도 최악의 중소기업들은 아니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규모가 있었던 중견기업에도 있었고, 스타트업이라도 나름 소소한 복지가 있었던 회사도 있었다. 그런데…. 

저글을 적었던 시기는 직장생활에 환멸을 느껴서 잠시 쉬고 있던터, 그동안에 겪었던 악덕 중소기업들의 사례를 모아 공유하자는 측면에서 적었다. 최악의 중소기업들은 아니었지만 요즘 유행하는 용어인 “좋소기업”에 해당되는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녹록지는 않았던 직장생활이었다. 

여기서 잠깐 “좋소기업”은 뭘까? 

웹 드라마 “좋좋소”의 포스터

대한민국의 기업 중 90% 인 중소기업들 중에 이상하고 나쁜 기업문화를 가진 악덕 중소기업을 뜻한다. 원래는 X소기업(단어에 욕이 들어감)이었지만 최근에 네티즌들이 약간 유화시켜서 나온 단어가 “좋소기업”이다. 

난 종종 직장 커뮤니티 & 카페에서 사람들이 올려놓은 체험기를 읽는다. 거기에 보면 소위 “좋소기업”이라고 불리는 기업들의 사례가 꽤 자주 올라온다. 그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이래서 중소기업을 가면 안돼…” 라며 좋소기업이라 칭하면서 욕을 하고 있다. 

내가 체험기를 읽는 이유는 나도 그 중소기업을 다니는 사람으로서 언제 겪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들은 그래도 “좋소기업” 수준에는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버티며 다닐 수 있었지만 다니다 보면 그 조짐이 보이는 바 과감히 퇴사를 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한 적이 있다. 나 또한 이직 경험이 많으므로 결코 나도 좋소기업을 겪지 말라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가… “추노” 방법을 알려주던 내가 “좋소기업”의 함정에 빠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위에도 얘기했듯이 나름 중소기업에서 많이 굴러먹어봐서 잔뼈가 굵었던 난 지금까지는 용케 최악의 좋소기업을 가진 않았었다. 그런데 작년 8월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다니다 보니 “준 좋소기업”으로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성격상 불합리한 부분이나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으면 과감히 행동하는 편인 나는 가정이 있는 몸에도 불구하고 일언반구에 때려치웠다. 물론 회사는 잡는 척(?)은 했지만 잘 가라는 식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아쉬울 것이 없는 난 안녕히 계시라고 하고 뛰쳐나왔다. 

그리고 대략 2달을 쉬었다. 와이프는 큰 걱정을 안 하는 듯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걱정 아닌 걱정을 한 모양이다. 일단 생활비부터 줄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통장에는 1년 동안의 생활비가 있었지만 남편이 저러고 있는 모습이 꽤나 불안한 모양이었다.  

물론 난 더 이상 이런 “좋소기업”은 안 갈 생각으로 차근차근 알아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최대 6개월을 쉬면서 생활비가 필요하면 알바라도 할 생각으로 있던 터… 어느 날 그 문제로 와이프와 싸우고 나니 약간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21세기라도 남편이 놀고 있으면 가정 불화는 생기게 마련이다 – pixabay

내가 설득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그 전에는 그럭저럭 와이프가 이해를 해준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와이프의 입장은 달라지는 듯했다. 하는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다시 일자리를 찾아 알아보기로 했다.  

다시 금방 기회가 오다

위에서 언급한 “추노” 방법에 대한 글을 쓰고 난 후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때의 기준은 아래와 같다. 

  • 이력서를 공개하되 “좋소기업” 냄새가 나면 즉시 차단할 것.
  • 최소 50명 이상, 매출액 100억 이상의 규모가 있는 중소기업을 갈 것.
  • 잡플래닛 평점 3점 미만은 되도록 가지 말 것.
  • 최대한 집 가까운 곳으로 갈 것.

그때 당시에는 최대한 빨리 직장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므로 일단 채용사이트에 이력서를 공개하는 게 빠를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이력서를 공개하면 원하는 기업들이 즉시 면접을 요청하므로 그만큼 채용 시간이 빨라진다. 물론 “좋소기업”들도 면접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기준으로 좀 기다리다 보니 나름 면접 요청을 한 회사들이 있었다. 난 IT 쪽 경력이 십 년 이상이므로 관련된 회사들의 이직 요청이나 면접 요청이 빈번한 편이다(실력이 있다기 보단 경력이 있다는 점 때문에) 

요청이 오면 “잡플래닛”을 통해 평판을 조회한 후 아니다 싶으면 무조건 걸렀다. 그러다가 3~4개 정도로 압축되어 면접을 진행하였다. 

처음 본 회사는 집도 가깝고 규모도 있으며 워라벨도 좋은 회사였는데, 면접 후에 연락이 일주일 넘게 안 와서 문의를 했더니 탈락했다고 한다. 아.. 아쉬웠다. 그 이유는 후보군 중에 제일 괜찮은 회사였기 때문이었다. 뭐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다른 회사들을 봤는데… 

면접을 볼 때 시험을 본다는 사전 공지도 없이 시험을 보게 하고 면접 시간이 무려 2시간을 넘긴 회사. 질문을 들어보니 기술도 없으면서 있는 척을 하고 날 하대하는 듯한 발언을 하니 영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시험도 일부러 적지도 않았다. 뭐 결과는 당연히 탈락. 

그러던 와중에 3번째 회사. 중견기업이 모기업으로 있고 집이랑 가까웠다. 내 경력과 업무가 맞았고 나름 인지도 있는 회사였다. 그래서 별 부담 없이 면접을 봤고 큰 어려움 없이 1차 면접에 통과했다. 

그런데… 이 3번째 회사는 잡플래닛 평점이 “1.5점”이다. 인원이 50명 이상에 매출액이 400억 정도인데 왜 평점이 이러는지 살짝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원래 내 기준으로는 이 회사는 안 가야겠지만 리뷰 글이 몇 개 없었고 당시에는 일단 회사들 가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어서 나름 꽤 고민한 끝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2… 1차를 합격했다고 하더니 전화로 연락을 주는 게 아닌 메일로 연락을 주는 것이다. 그래 놓고는 메일상으로 연봉을 제시하고는 이 연봉에 수긍하면 2차 면접을 진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겠다는 것이다. 이건 뭐야? 

좋소기업 냄새가 나는데? – pixabay

나름 중소기업 경험이 있지만 이런 “딜”은 처음 본다. 보통 최종 면접까지 다 합격하고 나서 해당 회사의 인사팀에서 연봉 협상을 진행하지만 1차 면접 합격했는데 연봉이 이 정도니 이거 OK 안 하면 채용 진행 안 할게~?라는 것이다. 그것도 전화가 아닌 메일로… 

황당했다. 그리고 연봉도 기존 연봉보다 깎아서 제시했다. 맘 같아서는 됐다 하고 안 가려고 했지만 상황이 어려운지라 마지못해 OK를 했다. 그러더니 무려 1주일 뒤에 2차 면접을 보기로 했다. 

2차 면접을 보고 나선 더욱더 이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1차 면접 합격 이후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2차 면접도 당연히 메일로 연락을 주고 진행하였다.(전화는 절대 하지 않았다.) 

면접 때는 더 가관이다. 2차 면접은 임원 면접이었는데 대표 달랑 한 사람이었다. 면접이 시작되자마자 처음부터 매우 강한 어조로 날 압박(?) 하기 시작한다. 

  • 전에 회사를 왜 그만뒀나? 특별한 사유가 있나? (뭐 이건 일반적인 것이라서 그러려니 했다.)
  • 전에 이런이런 일을 했다고 하는데, 우리 회사의 업무가 감당이 되겠나? 당신의 기술 수준이 높지 않을 거 같다. (여기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날 깎아내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전에 했던 일을 설명해 봐라.(그러면서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물음. 임원면접인데? 설명했더니 흠 생각보다 잘하는 건 아니네… 이럼)
  • 우리 회사는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당신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열심히 할 수 있겠나? (솔직히 대답하기 싫었으나 열심히 하겠다고 하고 넘어감)
  • 주말 출근을 할 수 있나? (아… 좋소기업 냄새가 났다. 그래서 필요하면 가능하겠다고 하자~) 필요할 때만? 항상 할 수 있나?(즉 주말출근도 할수 있다는 대답을 유도함)
  • 만약 당신이 퇴사한다면 어떤 이유로 퇴사할 것인가? (월급이 안 나오면 퇴사하겠다고 하자 빵 터짐. 그런 거 말고 다른 거 얘기하라고 하자 내가 관련 없는 분야의 업무를 하면 퇴사 사유가로 말함)

아.. 지금까지 여기저기 면접을 봤지만 내가 했던 것을 깎아내리는 곳은 처음 본다. 기분이 나쁜 상황에서 주말 출근/야근을 강요하는 듯한 멘트를 난리니 좋소기업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질문이 끝나고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라고 한다. 회사에 관련된 것을 물어보니 대표가 그런 건 왜 물어보냐며 쏘아붙인다. 흠 어이가 없다. 난 그냥 궁금한 걸 물어본 거뿐인데 그게 쏘아붙일 일인가… 

면접이 끝나고 인사담당자로부터 곧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 나왔다. 영 찝찝함이 남는 면접이었다. 그리고 많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그 회사에 입사하다

좋소기업 냄새가 물씬 나는 C회사(앞전에 면접 본 회사. 이후로는 C회사로 지칭)의 면접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내 기준에는 가지 말아야 할 회사다. 

그래서 다른 곳을 급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대로 내가 갈만한 회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나마 한 군데가 괜찮은 거 같아서 추가로 면접을 봤지만 연봉을 후려치는 바람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아.. 많은 고민이 되었다. 여길 가자니 좋소기업같고 안 가자니 또 시간이 흐를 태세다. 만약 C회사를 포기하고 다른 곳을 또 알아보면 언제 회사를 구할지 기약이 없다. 그리고 와이프와 아이들 생각에 시간을 더 잡아먹기는 사실상 어려웠다. 

정말 고민이 많이 되었다 – pixabay

이 앞전에 좋소기업까지는 아니지만 다니다가 좋소기업화 되던 회사들에게서 느낀 것은 아닌 회사를 계속 다니긴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다닐 수는 있다. 하지만 다니는 내내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지며 힘겨운 시간들을 보낸 것을 생각하면 섣불리 C회사를 들어가긴 어려울 거 같았다. 

또한 C회사는 아직 결과를 통보받은 게 아니었다. 그런데 임원면접의 경우에는 큰 문제없으면 대략 합격이기 때문에 C회사는 합격할 가능성이 꽤 높았다. (직감적으로 합격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더 고민이 되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 끝에 C회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다른 곳을 알아보고 결과가 좋으면 C회사를 포기하고 다른 곳을 가기로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기회는 내게 오지 않았고 여러 상황이 비추어볼 때 C회사를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리고 말았다. 결국 현실에 굴복했다….. 

생각보다 괜찮았던.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잡플래닛 평점 1점대의 C회사에서 곧 결과가 나왔다. 웃긴 것은 결과가 무려 2주 뒤에 나왔던 것. 그것도 내가 문의를 “이메일”로 해서 알게 되었다. 영 찝찝했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최대한 입사일을 늦췄다. 그 이유는 느낌이 안 좋은 회사라서 최대한 쉬었다가 입사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름 중견기업 자회사고 코스닥 상장사인 C회사는 입사하기 전에는 그럭저럭 업계에서는 이름이 있는 듯했다. 면접 때 영 느낌이 안 좋고 잡플래닛 평점도 1점대라서 걱정이 되었으나 괜찮겠지 라는 생각으로 입사일을 기다리며 푹 쉬었다. 

이직할때는 일부러 입사일을 최대한 늦춘다. 그 이유는 체력을 비축해야 장기전에 능하기 때문이다 – pixabay

와이프랑 못 갔던 휴가도 다녀오고 좀 더 편하게 잠도 잤다.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도 사 먹었다. 체력과 에너지를 비축해 놔야 혹여 좋소기업이라고 해도 처음부터 번아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입사 당일이 되었다. 

떨렸다. 느낌이 좋지 않은 C회사가 좋소기업이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현재는 어쩔 수 없다. 잘 버텨야 한다 라는 생각으로 30분 일찍 회사에 도착해서 잠시 쉬었다가 회사 건물로 들어갔다. 

기다리다 보니 면접 때 봤던 A 부장이 보였다. A 부장은 총괄 책임자이다. 그나마 C회사에 온 이유 중에 하나는 이 A 부장의 온화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 때문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물론 그게 최악의 인연인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하나둘씩 팀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B 과장이 반갑게 아는 척을 하면서 나한테 이것저것 가이드를 해준다. 그 외에는 다들 조용한 분위기다. 

전체 회의가 소집되어서 입사 인사를 했는데 왠지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자기소개도 건성건성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리고 따로 A 부장과 면담을 가졌는데 앞으로 뭐 할지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를 한 후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자리에 PC가 없다. 혹시나 해서 개인 노트북을 가져왔는데 정말 잘했다 싶었다. 왜 없냐고 묻자 혹여나 입사를 안 할 수도 있으니 PC를 준비 안 했다고 한다. 흠 느낌이 또 싸했다… 

개인 노트북으로 멀뚱히 앉아서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던터, 잠시 후에 A 부장이 부른다. 거기서 이런 얘기를 한다. 

“정원(내 이름)씨가 경력자이고 연차도 높으니 지금부터 일 시작하시죠. B과장이 알려줄 거예요” 

엥? 벌써부터? 난 입사한 지 4시간밖에 되질 않았다. 그리고 PC도 지급받은 상황이 아니다. 내 개인 노트북을 가지고 있지만 이걸 업무용으로 쓰라고? 당황스러웠다. 

입사 첫날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 pixabay

전에도 이직했던 첫날부터 일을 시작했던 적이 있긴 했지만 그땐 업무 인수인계였고 여긴 내가 직접 시작하는 것이다. B과장은 내게 PPT 문서 하나 던져주고는 “이대로 따라 하시면 돼요. 중간에 모르면 물어보세요.”라고 한다. 

아 우려했던 대로 좋소기업인가? 물론 단순 업무긴 하지만 아무리 경력자라고 해도 보통 일주일간의 적응 기간을 준다. 근데 여긴 입사한 지 4시간 만에 일을 시작하는 엄청난 속도전을 보여준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시작했다. 물론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냥 시키니까 한 거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다시 A 부장은 날 불렀는데 앞으로 할 일에 대하여 설명을 해 준다. 

“D라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D는 한 달 만에 끝내야 하고 끝난 직후 E 프로젝트를 2달 만에 끝내야 해요.” 

엥? 이렇게 빨리 일을 한단 말인가? (참고로 D라는 프로젝트는 4~5명이 한 달을 해도 끝내는 게 어려운 수준의 업무량이다.) 그래서 되물었다. 

“그럼 누구랑 같이 하죠?”, A 부장이 말했다. “일단 G라는 부장님과 같이 하는데 사정상 정원 씨가 지금은 혼자 해야 해요.” 

헉~ 하고 말았다. 설마 이걸 나 혼자? 물론 나중에 다른 프로젝트들이 끝나면 추가 인원을 할당해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시작부터 이러면 보통 혼자 하는 것은 기정 사실화다… 

각오는 했지만 역시나 처음부터 본색을 드러내는 C 회사. 더군다나 D 프로젝트와 관련된 경험이 있거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사내에 아무도 없다고 한다. 즉 나 혼자 자료 조사부터 개발, 테스트 단계까지 혼자 하라는 얘기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미 최소 몇 개월은 버티자고 한 마당에 굳게 마음을 먹고 일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역대 최악의 회사. 난 좋소기업을 몸소 겪고 있었다

PC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지만 첫날부터 일을 시작한 나. 그런데 그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내 개인 PC로 업무를 시작했는데, 이메일을 세팅하자마자 내게 이메일이 우르르 쏟아진다. 이메일을 보자마자 오 마이 갓! 개발 환경을 분석하고 조사하는 것을 내게 할당하고 어느 순간 내가 담당자가 되어 있었다.  

난 현재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사람들이 관련이 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냥 첫날부터 그렇게 정해져 버린 것이다. 나랑 사전 협의도 없이 말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 pixabay

개인 PC에 회사용 오피스 프로그램이며 개발 툴까지 전부 설치하는 것도 짜증스러운데 벌써부터 실무에 바로 투입되는 게 정상적인 것은 아닌 듯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내 머릿속을 후려치더니 이런저런 생각할 시간도 없이 오늘 시킨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첫날부터 쉴 시간이 없다. 퇴근 시간이 6시인데 겨우겨우 6시까지 끝마쳤더니 무슨 선심 쓰는 거 마냥 A 부장이 “오늘은 퇴근하세요.” 이런다. 오늘은?? 아 느낌이 안 좋다. 

다음날부터 뭐 불 보듯 뻔하다. 할당받은 D 프로젝트 관련하여 정신없이 자료조사를 하면서 개발 환경을 꾸미고 있던 상황에 느닷없이 J팀장이 오더니 내가 담당자냐라고 물어보면서 뜬금없이 일거리를 가져다 준다. 그러면서 어제 했던 그 단순 업무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D프로젝트 진행 & 단순 업무를 동시에 하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J팀장에게 지시를 받는 게 맞는지도 의아하지만 그 업무로 그날은 저녁 9시까지 일을 하게 되었다. 

한동안 D 프로젝트는 진행하지 못하고 J팀장이 지시한 업무만 주구장창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J팀장을 따라 외근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외부 업체 전화 대응을 해야 한다면서 내게 담당자라는 굴레를 또 씌워준다. 

이런 상황에서 A 부장의 D 프로젝트 진행 상황은 끊임없이 체크받는다. A 부장은 D 프로젝트도 같이 해야 한다면서 일정 조절이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했지만 얘기해도 소용없다. 그의 대답을 해볼 때까지 해봐~였다. 

이런 와중에 갑자기 J팀장이 이상한 I라는 업무를 가지고 와서는 이걸 해야 된다면서 갑자기 던져준다. 어이가 없지만 지금 동시에는 못한다고 하자 I는 급하기 때문에 당장 해야 된다면서 A 부장과 업무 협의를 하자고 한다. 

당연히 A 부장은 조율을 해준다고 생각했건만…. 아니었다. A 부장은 “그럼 I 업무도 같이해.. 할 수 있을 때까지…”였다. 

아… 업무 체계가 정말 엉망인 전형적인 좋소기업이다. 그리고 그 일을 나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처음부터 시작했다는 이유로 관련된 업무를 죄다 가져다주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러면서 난 아직도 회사 PC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입사 3주 만에 드디어 회사에서 제공한 PC를 제공받았다. 제공받은 PC에 환경 세팅을 하려고 했건만… 여기저기서 일이 몰려오고 있었다. 역시나 난 셋팅을 한동안 하지 못했다. 

A 부장은 이런 상황인데도 내게 조정을 해 줄 생각을 하지 않는듯 했다. 오히려 D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자료 조사후 세미나를 하라고 한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A부장은 내게 야근을 억지로 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그건 그냥 속임수일 뿐이었다. 일이 많게 되니 저절로 야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평균 저녁 8시 반 ~ 9시 퇴근이 기본이었다. 집에 가면 아이들은 자고 있었고 아빠 얼굴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밖에 여기서 겪은 좋소기업 행태는 이런 것들이 있다. 

  • 나 외에 다른 팀원들도 기본 2개 프로젝트를 동시에 한다. 물론 개개인이 절대 감당할 수 없지만 그렇게 일을 하는 문화이다.
  • A 부장은 일상이 거짓말이다. 분명 구두상으로 얘기를 한 것들이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말이 바뀐다. 솔직히 치매 환자가 아닌가 의심을 한 적이 있다.
  • J팀장과 나는 같은 팀이 아니고 같은 업무 포지션이 아닌데도 내게 업무를 다 떠넘긴다.
  • 여기 일정은 매우 짧다. 도저히 물리적으로 가능한 시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하라는 마인드다. 결국 제품들의 완성도가 매우 떨어져 욕을 먹는다.
  • B과장은 매우 정치질을 잘하는 인물이다. A 부장한테 찰싹 달라붙어서 지는 일을 하지 않고 남을 부려먹으려고 든다.
  • A 부장은 윗선에 보여주기식 업무를 많이 한다. 그래서 밑에 직원들만 죽어나는 구조다. 또한 정치질도 매우 잘하는 인물이다.
  • A부장은 주말에도 내게 전화해 업무를 해줄 수 없냐고 지시한다. 물론 미안해하지도 않고 당연하단 듯이 얘기한다.
  • 팀원들이 조금이라도 쉬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어떻게든 일을 엮어서 쉬지 못하게 만든다.
  • 팀원들이 역량이 어떻게 됐든 간에 무조건 투입하면 될 거라고 착각한다. 즉 군대식이다.
  • 사내에 고인물들이 너무 많다.

3~4개월을 어떻게든 버텼다. 내 옆의 R 대리는 내게 이런 말을 한다. “한 5년 다니신 거 같네요.” 

2021.11.23 – [리뷰/직장] – 회사에서 고인물(?)들을 판별하는 방법(feat. 월급루팡)

위의 글은 “고인 물 판별법”이니 참고하길 바란다. 

좋게 말하면 내가 그래도 큰 문제없이 업무를 처리했지만 나쁘게 말하면 짧은 시간에 혹사당했다는 뜻이다. 늘 늦게 오는 남편을 이해한다고 해도 와이프는 걱정과 동시에 애들 보느라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그것 때문에 또 싸움이 일어난다. 

지금까지 직상 생활하면서 최악의 상황이다. 전에 우려했듯이 좋소 냄새가 난다고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정말 솔직히 너무 부려먹는다 싶었다. 

그러던 와중에 퇴사 결심을 하게 된 한 사건이 일어난다. A 부장이 회사 보안을 유지한다면서 서버에 접근을 통제하는 것이다. 즉 서버에 아무나 접근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최근에 약간 불만스러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왠지 나를 염두에 두고 한 거 같았다. 

인내심의 한계가 다다르기 시작했다. 

정말 화가 많이 났다 – pixabay

회사에서 군소리 없이 묵묵히 일을 했건만 챙겨주지는 못할지언정 회사 자료를 빼돌리는 “도둑” 취급을 하니 신뢰감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즉 A 부장은 같은 팀원들도 못 믿는다는 뜻이다. 조직 생활에서 못믿는 자기 부하 직원들과 어떻게 일을 하려는 것인지 짜증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솔직히 같은 회사에 일을 하면서 자료 접근에 통제를 가하는 경우는 처음 보는 광경이라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즉 A 부장은 팀원들에게 의견 제시나 토를 달지 말고 시키는 일만 하는 “로봇” 같은 직원을 원하는 거 같았다. 

정말 최악의 회사다. 더 이상 열심히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해도 성과는커녕 도둑으로 의심하는 윗사람이 존재하는 회사다. 조금이라도 쉬면 쉬지 못하게 계속 일을 쌓아주는 악독한 기업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입사한 지 5개월 만이다. 그리고 곧 조건에 맞는 회사가 다행히도 나타나 주었다. 

“추노”를 결심하여 탈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탈출도 최악에 상황에 빠졌다.

더 이상 C회사에서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빠른 시간에 C기업을 추노 하기로 결심했다. 

이제 도망쳐야 된다고 결심하다 – 드라마 추노의 한장면

Q라는 회사에 합격이 확정되자마자 바로 A 부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무슨 소리를 하건 간에 무조건 그만둔다고 통보하였다. 

예상되는 수순이었지만 A 부장은 날 잡긴 했다. 하지만 나의 강력한 퇴사 요청에 힘입어 그도 더 이상은 잡지는 않았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갔다. 온갖 핑계를 대면서 나의 퇴사일을 자꾸 늦추자고 하는 것이다. 난 단호히 거부하고 예정 날에 퇴사하는 걸로 못을 박았다.  

퇴사가 기정 사실화되었지만 여전히 A 부장은 정확한 퇴사 날짜를 이야기 안 해준다. 뭐 내가 그냥 나가면 되는 것이니 인수인계는 잘해주겠다고 하고 알아서 하라고 하고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이날 퇴사한다고 메일상으로도 얘기를 해놨다. 

그래서 인수인계를 진행하였는데, 인수인계 중에 인수자로부터 거친 언사와 싸우려는 태도, 틈만 나면 트집잡기를 하는 바람에 내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드라마 “추노”의 한장면

정말 어이가 없었다. 난 단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인수인계만큼은 성실히 해줬는데 욕을 먹는 봉변을 당한 셈이다.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해 맞대응하면서 싸우기 시작했다. 인수인계 기간 내내 A 부장을 비롯하여 인수자들과 싸우는 바람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퇴사 결심을 하기 전에도 최악이라 생각했지만 안 해도 되는 인수인계를 성실히 해줬음에도 돌아오는 것은 욕과 비아냥, 트집, 싸움이었다. 정말 “좋소기업”의 전형적인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퇴사 처리도 최악이었는데 인수자의 사인 거부, 퇴사 날짜 여전히 안정해짐, A 부장의 서류 처리의 딴지 걸기, 인사팀의 연차 계산 딴지 등등. 정말 맘 같아선 노동부에 신고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많이 화가 났지만 꿋꿋이 인내하면서 결국엔 퇴사가 처리되었다. 주변에 조언도 얻으면서 나름 감정적인 대응은 하지 않은 결과 큰 탈없이 퇴사가 완료되었다. 혹여 당신도 퇴사할 때는 되도록 감정적인 대응은 안 하는 게 좋다. 큰 결정적인 잘못을 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 회사라는 조직을 개인이 상대하여 이기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나도 이런 조언들을 많이 들어서 더 이상 상대 안 하기로 했다. 

좋소기업 체험을 하며…

이번 경험을 계기로 “잡플래닛”의 평점 후기가 생각 외로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평점 1점대 회사는 가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삶을 살다 보면 정말 별의별 일들을 다 겪게 된다. 이번 경우에는 좋소기업인줄 이미 어느 정도 파악은 했지만 현재 여건이 어려워서 들어갈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좋소기업”은 정말 걸러야 되는 게 현실인가 보다. 물론 개개인에 따라서는 가정을 먹여 살리고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좋소기업”임에도 다녀야 되는 현실인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다닌 C 회사는 여전히 80~90년대의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무작정 빨리 해야 하고 최대한 적은 인원이 많은 효과를 내길 바라는 기업 문화이다. 결국 이런 체계 없고 무대뽀 적인 업무 체계는 현 경제 상황에서 결국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 항변하자면 투자할 여력도 없고 인원이 없는 악순환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은 결국 화살이 되어 돌아올 수 밖에 없다. 계속 그 자세를 유지하면 “좋소기업”을 오지 않거나 탈출하려 할 테고 그 회사는 발전할 수 없다. 

오늘은 결론 “좋소기업이라 판단되면 절대 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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